주정강화 와인하면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이나 스페인의 셰리 와인은 많이 떠올려도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시칠리아 섬의 마르살라 Marsala 와인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을 겁니다. 이탈리아이면서도 카르타고, 아랍 등 이국적 풍토가 있는 시칠리아 마르살라 지방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18세기 영국에서 적극 수입한 이래로 19세기에 이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정강화 와인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포트 와인과 셰리를 넘어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마르살라 와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르살라 주정강화 와인
주정강화 와인, 적어도 대량생산 방식의 주정강화 와인은 잉글랜드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1337년 즈음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발발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잉글랜드는 노르망디 공작 시절부터 보유하고 있던 노르망디와 플랑드르, 아키텐 등에서 질 좋은 와인을 수입해갔습니다. 아키텐은 오늘날 보르도 지역으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고 영국 귀족들은 프랑스 지방의 와인에 깊이 매료됐습니다.
역사, 백년전쟁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못마땅했던 프랑스 왕에 의해 13세기 아키텐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 대륙 영토를 프랑스에게 뺏기게 됩니다. 아키텐 지역은 잉글랜드에 있는 왕지에서 나오는 지대와 맞먹는 만큼의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었으므로 잉글랜드 왕이든 프랑스 왕이든 항상 눈여겨 보고 있던 영지였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아키텐 지역을 손에 넣으려는 프랑스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할아버지가 되는 에드워드 1세 시절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아키텐 지역의 공작 자격으로 해당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에게 아키텐의 공작으로서 프랑스 왕의 명령을 들으라고 소환합니다. 잉글랜드 왕이기도 한 에드워드 1세는 당연히 이에 반발하여 불응하였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흐지부지 되면서 현상 유지 차원에서 종결됩니다. 그러나 이윽고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던 에드워드 3세가 왕위계승을 주장하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그 유명한 잔 다르크의 등장과 함께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잉글랜드는 프랑스 대륙에 보유하고 있는 영토를 모두 잃고 맙니다. 보르도 와인을 잃어버린 겁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잉글랜드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와인을 수입하기 위해 혈안이 돼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먼저 발견한 곳이 바로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에서 셰리 와인을 얻은 영국사람들은 주정강화 와인에 눈을 뜹니다. 장기간의 항해에도 상하지 않는 와인은 생산이 끊긴 와인을 공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17세기가 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은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입니다. 영국과 군사상업 협정을 맺었던 포르투갈에서 대량으로 주정강화 와인을 수입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 무역로를 확대하던 영국 상인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마르살라라는 항구에서 주정강화 와인을 발견합니다.
마르살라 와인 특징
마르살라 와인은 셰리, 포트 와인처럼 주정강화 와인으로 알코올 발효가 다 끝나기 전에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넣어서 발효를 중지시킨다는 점에서 생산 원리가 동일하고 따라서 달콤한 맛이 나는 점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셰리가 스페인 품종(팔로미노Palomino, 페드로 히메네스 Pedro Ximenez)을 쓰고 포르투갈이 포르투갈 품종(투리가 나시오날 Touriga Nacional, 틴타 호 리즈 Tinta Roriz)을 쓰듯 마르살라도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인 그릴로 Grillo, 인졸리아 Inzolia 등을 사용하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전성기 마르살라에는 20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있었다고 할 만큼 대항해시대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에서는 마르살라를 이용한 요리법이 많이 사용될 만큼 여전히 애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달달한 맛을 내기 때문에 디저트와 함께 마시거나 아예 디저트를 만드는 레시피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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