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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이야기

파리의 심판, 와인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

by 김주뱅 2023. 2. 6.

파리의 심판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와인 업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건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파리의 심판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와인

배경

예로부터 와인 업계에서는 프랑스 와인이 제일이라는 일종의 편견이 있었습니다. 코카스 지방에서 시작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지나 유럽 대륙으로 널리 퍼진 와인 양조 문화는 프랑스라는 천혜의 지형을 만나 꽃 피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때든 포도를 재배하는 지방에서는 동네마다 고유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마시고 있었고 프랑스 와인이 콧대를 높이던 20세기 후반까지도 각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랑하는 와인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다 발견하지 못한 토착 품종들로 와인을 담가 마시고 있었고 로마시대 꽃 피웠던 와인문화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전폭적 지지 속에 와인을 양조했던 이탈리아에서도 곳곳마다 특별한 와인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영국과 세계 각지에서 마르지 않는 수요를 채우기 급급할 만큼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와인 애호가들은 특히나 프랑스 사람들은 최고의 와인은 오로지 프랑스 와인뿐이고 와인의 가장 완벽한 모습이 프랑스 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단

그러나 20세기 후반이면 벌써 신대륙에서도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고 와인을 만들어온 역사가 몇세대가 넘는 지역도 있었기 때문에 마셔보지도 않고 "미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치도 없는 와인이라는 취급을 받는 데 대해 불만이 쌓여왔습니다. 특히나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는 양조학과까지 만들어놓고 치열하게 연구한 끝에 자부심을 가질만한 발전을 거듭해 왔기에 캘리포니아 와인은 와인 애호가들의 편견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스티븐 스퍼리어라는 영국 와인 평론가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제안하게 됩니다. 이에 1976년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제안자 스티븐 스퍼리어 본인과 본인의 제자이자 미국인인 패트리샤 갤러거를 제외한 9명 모두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판정단이 와인을 시음하게 됩니다. 이때 참석한 프랑스인들도 모두 미슐렝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이거나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등 와인업계의 저명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공통적으로 이들은 프랑스 와인이 당연히 압승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일

당일 일정은 오전에 화이트 와인을 먼저 시음한 후 오후에 레드 와인 시음으로 진행됐습니다. 프랑스 와인이 우승할 것이라는 모두의 기대 속에 오전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레드 와인 시음 이전에 화이트 와인의 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를 경악시키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상위 5위 안에 미국 와인이 3개나 위치하는 결과에 평가단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흔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짝 긴장한 평가위원들은 레드 와인에서는 프랑스 와인이 이겨야 한다는 모종의 긴장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드 와인 시음 결과에서도 미국 와인이 1등을 해버리고 맙니다. 요즘에 와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수준급의 와인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 결과의 의미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현장을 취재하고 있던 타임지 기자에 의해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 퍼졌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전 세계를 브랜드 이미지로 호령하고 있던 프랑스 와인 업계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캐시카우가 망가 버리는 뼈아픈 순간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동안 멸시를 당해왔던 미국 와인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통해 인정받았다는 자신감과 함께 그동안 과학적으로 연구하며 개발해온 성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결과가 알려진 즉시 온갖 음모론과 폄훼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미국 와인이 선전하고 프랑스 와인이 일관되게 저평가받자 일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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